본문 바로가기
스코틀랜드/스코틀랜드에서 IT로 먹고 살아보자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개발자로 1년

by 헨젤과 그레텔 2023. 9. 2.

 입사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이전에는 IT업계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 비교를 못 하니 대단히 주관적으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사원 20명이 되지 않는 작은 바이오테크 회사가 어떤 근무형태를 가지고 있는 지, 내 생활은 어땠는 지 적어봅니다.

(좌)회사에서 매 달 진행하는 보드게임모임, (우)근무를 방해하는 하비

 

0. 개발 1년

 일이 재밌다. 하루 종일 수학 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학창 시절 수학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무슨 언어든 상관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요 임무이기 때문에 시간도 빨리 지나가고 매일매일 성취감도 상당하다.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진행한 것 같은데 다시 같은 문제를 만나도 늘 새롭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 기억을 할 수 있을 만큼 기록을 해야 한다. 
 개발을 시작하고 개발자들이 주위에 많아졌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보를 주고받기 거리낌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분야의 개발자들 이야기를 들으며 내심 미래를 위한 공부 압박을 받기도 하지만 공부를 즐기는 마음과 스트레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이 작은 회사에서도 개인 공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올해 초에는 CSS강의를 수강하고 들으며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끝나면 또 필요한 강좌 수강료 지원을 해줘 지금은 Nextjs를 공부하는 중이다.
나를 위한 게 회사를 위한 일이다. 한국에서 늘 회사를 위한 게 나를 위한 것이라고 들은 바와는 아주 상반된 방식이라 늘 나를 위해 일을 하는 기분이다.
 연봉은 영국 물가가 비싼 만큼 많이 주는 편일지도 모르겠다. 주위에 나보다 많이 받는 주니어 개발자들도 많지만 동시에 적게 받는 개발자들도 많은데 평균보다는 높게 받는 편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통계적으로 스코틀랜드 평균연봉은 잉글랜드보다 약간 적다.) 신입으로 적지않은 연봉으로 시작했는데 1월과 7월, 시장 평균 인상률보다 높은 연봉 인상이 두 차례 이뤄졌고 이로 인한 금전적인 성취감도 얻을 수 있었다.
 

1. React, Spring, JHipster, Thymeleaf, Github Actions, Python, Flask, Azure DevOps, Azure Batch, Nextjs 등을 만지고 수정하고 만들었던 1년.

 우리 회사는 생명공학 관련 프로젝트 컨설팅을 주로 하는 회사라 고객에 맞춰 다양한 언어와 툴을 사용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다른 개발자 친구들에게 오히려 유망한 웹앱이나 나만의 길 하나를 열심히 달리는 게 더 전망이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나는 이것들이 모두 소프트웨어와 친해지는 과정이고 늦은 나이에 커리어를 재시작한 입장에서 이런 다양한 언어의 경험은 내게 큰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
 

2. 유연, 압축 근무제의 힘

 처음 6개월은 주 5일을 근무했다. 유연근무 시스템을 위해 우리 회사는 체크인 체크아웃 근무 시간을 계산하는 앱을 사용하고 있다. 주 36시간 근무로 올 3월까지는 하루 약 7시간 10-15분 정도 일을 하면 됐는데 늘 일어나려는 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해결책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20분, 30분씩 일을 더 하다 보면 금요일에는 오후에 일을 하지 않아도 36시간이 채워지는 상황이 매주 발생했다. 그래서 3월부터 주 4일 근무제로 (일 근무시간 9시간) 보통 8시부터 점심시간 30분 제외하고 5시 30분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재택근무로 출퇴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아주 만족할 만한 균형이 만들어진 것 같다. 목요일저녁이면 주말이 시작되기때문에 근무일과 휴일의 5:5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지각이 없다. 9시 15분에 스탠드업 미팅을 진행하지만 자유로운 시간 조절로 오전시간에 근무할 수 없다면 저녁 시간을 이용하거나 다른 날 더 길게 근무하는 것으로 시간을 직접 조절할 수 있어 집 공사, 자동차 정비, 병원, 미용실 등의 예약일을 정하는 부담이 사라졌다.
 휴가에 대한 압박이 없다. 영국에서 휴가 사용이 자유롭다고 해도 직무에 따라서 동료와 휴가가 겹치지 않게 조절하는 게 필수일 수 있는데 3-4주를 계속 휴가를 내도 내일 당장 휴가를 내도 큰 문제가 없다. 처음 휴가를 신청할 때 너무 급하게 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어차피 사용해야 할 휴가라 내일 당장 휴가를 내도 괜찮다는 것이 라인 매니저의 대답이었다. 휴가 일수는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다. 우리 회사 휴가는 주 5일로 일 할 경우 32일, 주 4일일 경우 25.5일로 주말 포함 약 6주하고 이틀 정도 더 사용할 수 있다. 올해 휴가가 5일 남아있다면 내년 휴가로 넘길 수도 있다. 
 

3. 완전 재택근무

9시간 근무를 해도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피로감이 확실히 덜하고 전날 잠자리가 편하다. 교통비도 줄고 점심을 따로 싸거나 사 먹지 않아도 되니 그에 대한 시간과 돈 절약이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나에게 집에서 일하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한 적은 네 번있는데 보통 미팅때문에 만난 것이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외에는 한 달에 한 번 근무 끝나고 사무실로 향해 맥주/와인을 마시며 보드게임을 함께 한다.
 

이제 2년차 개발자

 여태 뭘 했냐 스스로 물어본다면 특별한 계획은 없이 해야할 것만 쫓아온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2년차라고 뭐가 달라질까?
 이제 약 1년 정도 오래된 코드를 관리하는 일을 시작한다. C#을 이용해 응용프로그램을 만질 수 있는 개발자가 된다. 웹 애플리케이션 쪽도 계속 공부를 중이고 조금씩이라도 개인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끈을 놓지 않을 예정이다. 
 2년차. 앞으로 조금 더 섬세하게 ‘다양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마법사 같은 개발자가 되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