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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글/영국생활

빚쟁이, 스코틀랜드에서 생애 첫 집 장만.

by 헨젤과 그레텔 2021. 9. 19.

우리집 아님. 스코틀랜드의 가을




2년.
정확히 2년 전 2019년 9월 스코틀랜드에 입국했다. 그런데 나는 2016년 서울에서 결혼할 때도, 그리고 2년 전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도 부끄럽게도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종종 그리워하지만, 아내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가득했던 2년간의 한국 생활을 많이 힘들어했었다. 내가 영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결혼 비자를 받으려면 짧아도 9개월, 장기간 떨어져 있어야 했고 비자 발급 비용도 만만치 않아 단지 함께 지내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동부 낭트에서 반년 가까이 지내며 빚을 더 쌓기도 했다. 그러다 브렉시트로 프랑스를 통해 영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앞이 보이지 않게 됐고 더는 빚을 낼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러 프랑스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었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에 있던 장인어른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 아내는 한국에서 다시 스코틀랜드로 먼저 들어오게 됐고 결국 1년간 떨어져 지내며 결혼 비자를 받기로 했다. 비자를 받기 위한 장거리 연애 그리고 서로 잦은 비행기 이용과 비자 발급(결혼비자 발급 비용만 450만 원…)으로 인해 갚아나가는 빚과 쌓이는 빚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도 않게 됐다.

1970 포드 F100 트럭타고 미국을 횡단하기 전


우리는 미국에서 만났다. 아내도 땡전 한 푼 없던 내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를 스코틀랜드로 초대를 했고 그렇게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나를 많이 좋아해 줬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를 떠난 지 6개월, 아내는 일을 그만두고는 먼 한국으로 찾아와 나와 결혼을 했고 너 나 할 것 없이 함께 빚을 만들어가는 처지가 됐다. 이 악순환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더 애틋하게 그리고 더 악착같이 버텼던 것 같다. 그때는 20대라는 나이를 그렇게 즐기고 싶어 그랬는지 빚보다 현실에 더 만족하기 위해, 추억이라는 명분으로 아끼지 않았었다.

결혼식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바로 취직에 성공하며 한국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정말 힘들게 보냈다. 그때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고양이 코코를 치료한다고 동물병원 무이자 할부를 엄청나게 긁었다. 돈을 벌어도 남는 게 없었던 그때 나는 심각하게 이 세상 어떤 초자연적인 누군가가 내가 아내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으며 하루하루 우울을 안고 지냈다.
그리고 아내가 떠난 지 1년 만에 어찌어찌 감격스럽게 그것도 할부로 비자를 받았다.

스코틀랜드에 도착 한 날 환영식을 거대하게 치뤄준 가족, 친구들



2년 전 9월 아직도 빚에 허덕이며 스코틀랜드에 입국했는데 한술 더 떠 약 4개월간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 영국에 오면 잡일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은 어디 가고 한국에서 일했던 생각으로 좋은 곳에 들어가기 위해 이력서를 냈었는데 이케아에서 면접을 본 것(그리고 면접 실패) 외에는 역시 어느 회사에서도 연락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월세는 계속 100만 원씩 나가지, 그때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5개월째 되던 달부터 나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사진 촬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예약 손님들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며 하나둘 촬영 예약을 취소하니 그때는 또 불안과 절망으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2020년 2월 곧바로 파트타임 일을 알아봤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아름다운 식당에서 새벽부터 식당을 열기 전까지 청소하는 일로 주급을 받기 시작했다. 팀원들이 영어를 하나도 못 해 매니저가 나를 엄청 이뻐해 줬다. 그리고 정확히 4주 뒤 아내와 오랜만에 방문한 단골 펍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국가 봉쇄 뉴스를 접했다. 그렇게 또 모든 것을 접게 됐다.

새옹지마인가.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사람이 필요해진 곳에 급하게 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시국에 맞이한 천운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직업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월급도 한국에서의 그것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어서 늘 다른 일을 꿈꾸고 있는 평범한 부부라고 해도 되지 않나.

그런데 일을 하지 않은 5개월을 빼면 20개월만인, 빚더미를 걷어찬 지 13개월 만인 다음 달, 공교롭게도 5주년 결혼기념일 다음 날, 우리는 우리 소유 첫 주택 열쇠를 받게 된다.

이사 갈 집의 정원. 3-4년은 족히 방치된 것 같다. 노인분이 혼자 지내시다 돌아가셔서 급하게 매물로 나온 1900년에 지어진 집이었는데 3월에 한 번 부동산 구입 신청을 했다 실패했지만 8월에 계약파기로 다시 신청할 의향이 있냐고 연락이 왔다. 집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이사 후 정리해 올리는 것으로.


이상하다. 우리가 거지처럼 지내며 돈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장모님과 잉글랜드 체스터로 여행을 갔을 때, 우리 고양이 하비와 메이지 병원에서 수술했을 때, 크리스마스, 중고차를 샀을 때, 그리고 여름휴가 때, 그러니까 20개월 중 이 5개월은 오히려 크게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는데… 그런 우리가 집을 살 수 있는 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소리를 20년 전부터 들으며 자라는 바람에 나에게는 너무도 어색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잉글랜드에서는 주택을 파는 사람이 마음을 바꾸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해서 키를 받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고 하지만 다행히 스코틀랜드는 이미 부동산 서류와 모기지 서류가 완료된 상태라 주택 거래가 취소될 일은 없단다.

물론 은행에 꾸준히 이자를 내야하지만 그래도 이제 월 100만 원씩 나가던, 이 마음에 들지도 않던 집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공간과 정원을 꾸미며 지낼 생각에 마음이 기쁘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차고 있는지 끔찍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것으로 생각하니 정말 기쁘다. 늘 나를 응원해주는 가족과 아내, 그리고 친구들에게 고맙다. 언젠가 하나하나 우리 공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9월 18일 이제 2차 백신접종까지 마친 분들은 스코틀랜드 입국 시 자가격리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움을 보러 놀러 오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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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4i7ZvnOR9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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